2006년에 강풀이 웹툰 '26년'을 그렸다. '26년'이라는 제목은 2006년이 광주민주화운동이 일어난 1980년으로부터 26년이 지났다는 의미이다. 실존 인물이 등장하지 않는 픽션이라는 주가 붙어 있지만 당연히 만화 속 인물은 전두환이다. 

그리고 2008년에 청어람이 '26년'을 원작으로 한 영화 '29년'을, 2009년 개봉을 목표로 제작한다고 발표하였다. '천하장사 마돈나'의 이해영 감독이 연출과 각색을 맡아 시나리오도 쓰고 캐스팅도 마친 상태였는데 크랭크인 직전에 투자금 문제로 영화 제작이 무기한 연기되었다. 네티즌들이 제작비 모금 운동을 벌이기도 했지만 허사였다.



<29년> 캐스팅. 진구, 천호진, 류승범, 김아중, 변희봉, 한상진


그렇게 시간은 흘렀고 올 초 다시 권칠인 감독을 물망으로 원작의 것과 같은 '26년'을 제목으로 하여 영화를 다시 제작한다는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네티즌을 대상으로 10억원의 제작비 조달을 위한 크라우드 펀딩을 실시하였으나 목표액을 채우지 못하여 모금액은 그냥 환불되었고 영화 제작은 또 다시 기약 없이 연기 되는 듯 했다. 그러나 크라우드 펀딩을 실시한 것이 이슈가 되어 이승환의 드림팩토리, 김제동 등을 포함한 개인투자자들로부터 20억원을 투자 받아 드디어 촬영을 시작하고 온라인 제작 두레도 다시 열어 7억원이 추가로 모였다.

연출은 맨 처음 '29년' 제작 때부터 참여해 온 조근현 미술감독이 맡았다. 각색을 먼저 맡은 것이 계기가 되어 연출까지 하게 된 조근현 미술감독은 이 영화로 입봉을 하게 되었다. 출연진으로는 진구, 한혜진, 임슬옹, 이경영, 배수빈, 장광, 조덕제 등이 새로 캐스팅 되었다. 그리고 드디어 영화가 완성되어 이번 주 개봉을 앞두고 지난주부터 먼저 제작 두레 참여자들을 대상으로 전국에서 대규모 시사회가 열렸다. 

지난주 토요일 신촌 아트레온에서 열린 시사회에 참석하였다.(아트레온은 수익성 악화로 조만간 CGV로 임대전환할 예정이라고 한다.) 신촌역 4번 출구에서 아트레온으로 올라가는데 시사회에서 받은 둘둘 말린 포스터를 들고 내려오는 사람들이 많았다. 아트레온에서는 토요일에만 세 관에서 2회차동안 시사회 상영을 하였기 때문에 시사회를 보러 온 사람들이 많았다. 다들 약간은 들뜬 분위기였다. 적게는 2만원, 5만원, 많게는 29만원씩 내어 우리가 만든 영화, 처음 영화가 만들어진다고 한 지 4년만에 제작된 영화를 드디어 볼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모든 관에서 무대인사가 진행되기도 하여 주연배우들을 만나기 전 설렘도 있었을 것이다.


조덕제, 배수빈, 진구, 한혜진, 최용배 청어람 대표.

마상렬 역의 조덕제 씨가 극 중 캐릭터 때문인지 시종일관 저 자세로 있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사실 영화가 잘 나왔을 거라는 기대감은 별로 없는 편이었다. 일단 강풀 만화가 원작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강풀 만화를 스크린으로 옮겨 호평을 받은 사례가 거의 없다. 이제는 '강풀 영화'라고 하면 원작의 묘미를 못 살린 재미 없는 영화라는 뉘앙스마저 느껴지게 되었다. 그나마 최근작 '이웃사람' 정도가 비교적 반응이 좋은 편이었다. '26년'도 이러나 저러나 어쨌든 '강풀 영화'이고 제작 과정에도 이래저래 난항이 많았으니 영화 완성도에 있어서는 별로 큰 기대가 들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도 기대는 크게 틀리지 않았다. 원작에 비해서도 영화만 두고 봤을 때도 썩 만족스럽진 않다. 다만 그럼에도 영화의 처음부터 끝까지 참상의 먹먹함, 그 사람에 대한 분노, 끝나지 않은 상처들이 많이 느껴진다. 그런 면에서 이 영화가 개봉하고 빛을 보는 것만으로도 많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결국 이제 내일이면 '26년'이 개봉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볼 수 있었으면 한다.




엔딩크레딧 말미에 10분 넘게 이어지는 제작두레 참여자 명단.






26년 (2012)

7.6
감독
조근현
출연
진구, 한혜진, 임슬옹, 배수빈, 이경영
정보
드라마 | 한국 | 135 분 | 2012-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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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7 영화를 극장에서 보기 시작한 건 '카지노 로얄'부터, 그러니까 다니엘 크레이그가 007을 맡으면서부터다. 그 전 영화들은 극장은 물론이고 티비 등에서도 제대로 본 건 없었던 것 같다. '카지노 로얄'이 나왔을 때 "외모도 투박하고 몸만 던지는 007이 무슨 007이냐"라는 반응이 많았다. 본 시리즈의 영향이 007에도 미친 결과였다. 본 시리즈의 액션은 그 이후 나왔던 거의 모든 영화의 레퍼런스처럼 되어 버렸으니.


'스카이폴'은 '다크 나이트'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가히 '다크 나이트'는 히어로물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다. 더 나아가 액션 블록버스터의 새 장을 열었다고도 할 수 있다. 스타일리쉬한 영상 속에서 펼쳐지는 혼란의 시대, 고뇌하는 영웅, 흔들리는 주인공의 이야기. '스카이폴'은 제목부터 제임스 본드의 몰락을 연상시키고 있다. 영화 속 제임스 본드는 늙고 쇠퇴했다. 50주년 007 영화로서 50년의 세월을 그대로 제임스 본드에 투영시킨 듯하다.


50년을 지속한 프랜차이즈는 칭찬 받아 마땅하다. 007의 존재 이유를 설파하는 M의 모습은 설득이라기보단 자찬이자 자축이라고 느껴졌다. 그러면서 영화는 007의 새로운 시작을 알리고 있다. '카지노 로얄', '퀀텀 오브 솔라스'가 기존의 007에서 탈피한 액션 영화를 표방했다면 '스카이폴'은 전작과 전혀 다른 줄기의 내용으로 지난 50년을 반추하고 계승하지만 또한 새로워질 것임을 약속하고 있다. 이제 본드로 익숙해진 다니엘 크레이그를 이렇게 잘 활용하여 007의 몰락과 '부활'을 표현한 것에 감탄한다. 샘 멘데스의 연출은 영화를 고상하고 우아하게 만들었고 로저 디킨스의 촬영은 007의 부활을 너무나 아름답게 담아냈다. 그리고 다니엘 크레이그는 제임스 본드로서, 007 영화의 화신으로서 '부활'하였다. 조커의 향기가 느껴지는 실바는 역대급 빌런이 될 포스를 보이는 듯 했으나 실바가 아니라 하비에르 바르뎀이 풍기는 것이었던 것 같다.


기존 007 팬들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007의 새로운 시작은 반갑다. 007이 본에 영향을 받고 다크 나이트에 영향을 받아도 노장으로서 뒤지지 않고 계속 시리즈의 지속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은 관객 입장에선 즐거운 일이라고 느낀다. 그리고 크리스토퍼 놀란이 '다크 나이트'를 통해 간접적으로 007 시리즈에 영향을 미쳤다면 차기작 중 하나는 직접 연출할 일이 생길지도 모르겠다. 제작자와 놀란 감독이 서로 관심이 있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당분간의 일은 아니겠지만 그렇다면 더더욱 007은 이래저래 앞으로도 장수할 모양이다.





007 스카이폴 (2012)

Skyfall 
6.8
감독
샘 멘데스
출연
다니엘 크레이그, 하비에르 바르뎀, 주디 덴치, 랄프 파인즈, 나오미 해리스
정보
액션 | 영국, 미국 | 143 분 | 2012-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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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토탈 리콜' 리메이크가 개봉했을 때 원작을 먼저 보냐 리메이크를 먼저 보냐는 질문에 '리메이크를 먼저 봐라. 원작을 먼저 보면 리메이크는 너무나 재미 없을테니'라고 답하는 사람을 본 적이 있다. 이 영화도 비슷할 수 있는데 원작 소설이 너무나 탁월하므로 (듣기로..) 다른 각색작들을 먼저 봐야 할 것이다라는 것. 아니면 원작의 재미를 훼손할 수 있으므로 원작이나 감상해라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스탭에 아는 친구도 있고 해서 그냥 봤다. 그보다도 원작과 많이 다른 분위기로 연출을 했다고 들었기 때문에 약간은 다른 작품 보듯이 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이 영화는 추리보다는 멜로의 감성에 치중하고 있다. 각본부터가 원작에 비해 인물을 단순화하고 각 인물들의 감정을 표현하는데에 신경을 많이 쓰고 있고 배우들은 그 역할을 톡톡히 해내며 지루하다 싶을 정도로 느린 호흡의 연출은 그것을 극대화한다. 류승범의 연기가 역시나 특히 인상적이었다. 이요원도 생각보다 잘한 것 같고. 미술과 촬영도 굉장히 섬세하게 영화가 멜로 영화로써 가치관을 공고히 하는데에 일조한다. '완전한 사랑'이라는 가제가 꽤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마케팅 등 이유로 '용의자X'라는 제목으로 돌아왔겠지만 영문 제목은 여전히 'Perfect Number'로 되어 있다.


뭐 어쨌든, 그래서 이제 원작 소설이나 빨리 읽어 봐야겠다.





용의자X (2012)

Perfect Number 
7.4
감독
방은진
출연
류승범, 이요원, 조진웅, 곽민호, 김보라
정보
미스터리 | 한국 | 110 분 | 2012-10-18




근래 스쳐 지나가는 봐도 그만 안 봐도 그만이라는 액션 영화들이 많이 나와서 안 본게 많은데 '루퍼'는 초기 반응이 많이 뜨거워서 기대감이 좀 있었다. 반짝반짝한 SF 영화 하나 나왔나 하고. 조셉 고든 레빗, 브루스 윌리스가 주연인 점도 기대를 높이면 높였지 디버프 요소는 아닐 것이고.


잘 몰랐는데 시간 여행을 소재로 한 내용이었다. 닳디 닳았을 것 같지만 한 편으로는 무궁무진한 소재. 처음에 조셉 고든 레빗이 주저리 루퍼라는 직업과 배경에 대해 설명해주고 루퍼들의 삶과 루퍼에게 벌어지는 일들이 나오는데 사실 이것만으로도 꽤 흥미로웠다. 그리고 영화가 편집이 잘못되었나? 라는 생각이 찰나 들 수도 있는 장면이 나오면서 영화는 정말 갑자기 다른 물살을 탄다. 이 분위기 반전은 정말 재미있었다.


그 속에서 이 영화가 시간 여행이라는 재료로 만든 것은 '미래의 나를 만나는 일'. 실제로 미래의 나를 만난다면, 굳이 미래의 내가 아니어도 또 다른 나를 만난다면 어떻게 대해야 할 지 상상이 안 가는데 영화 속의 조가 미래의 조를 대면하는 장면에서도 본인이 본인을 만나고 있다는 사실이 잘 와닿지 않았다. 알고 보는데도, 모르는 사람이 보듯 아버지와 아들 같고. 어쩌면 결국 그게 영화에서 중요한 장면이고 주제가 담겨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드라마가 많이 강조되어 있는데 사실 상대적으로 액션이 부족해서 그렇게 보이기도 하는 것 같다. 이 영화 제작비가 상당히 낮은 영화다. 제작비 문제 때문에 영화의 중요한 로케이션까지 바꿔버렸을 정도이니.. (갑자기 끼어든 것 같은 나라가 바로 제작비 때문) 많은 사람들이 지적하지만 다이하드 떠올리게 하는 막무가내식 액션 씬도 있고. 그리고 역시 가장 큰 단점은 원하는 것을 위하여 설정의 남용이 편의적으로 이루어졌다는 점. 많은 것들이 끼워 넣어진 느낌이 있다. 어차피 시간 여행 자체가 모순이 있을 수 밖에 없는 내용이고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니 설정 상 모순 또는 무리한 설정이 별로 거슬리지 않는다고 하는 사람, 그리고 설정 상 구멍 때문에 몰입과 이입이 방해 받는다는 사람이 나뉘기 딱 좋은 정도의 수준으로 남용한 것 같다. 왜냐하면 이걸 덮을 정도로 매력적인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한 번 더 보면 어느 쪽에 가깝게 느껴질까? 아마 한 번 더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것 자체가 이미 전자에 가까운 것 같다. 그리고 한 번 더 볼 유인이 충분한 이유. 라이언 존슨 감독이 코멘터리 파일(링크)을 인터넷에 올려 버렸다. 이어폰을 꽂고 이걸 들으며 영화를 보면 된다.. 완전 매력적인 재관람 유도. 물론 문제는 영어라는 것. 그래도 한 번 시도해볼까..?


최고다라고 느껴지지는 않지만 반짝반짝한 부분이 있는 영화다. 이래저래 감독의 전작이 보고 싶어지고 차기작을 기대하게 하는 영화다. 물론 이 영화를 한 번 더 보고 싶은 마음도 들게 하는 영화다.




루퍼 (2012)

Looper 
8.4
감독
라이언 존슨
출연
조셉 고든-레빗, 브루스 윌리스, 에밀리 블런트, 폴 다노, 자니 영 보쉬
정보
SF, 액션 | 미국 | 119 분 | 2012-10-11




다큐멘터리라는 형식이 주는 특징 중 하나는 실제 있었던 일이라는 점이 주는 감동의 배가이다. 이 영화야 말로 다큐멘터리의 이런 장점이 극대화된 작품이 아닌가 싶다. 아무도 관심 갖지 않은 두 장의 앨범이 만들어 낸 기적 같은 이야기. 그 전설 같은 음악들이 영화 내내 배경음악으로 깔리는 건 보너스. 단서를 좇는 추리 극영화 같이 진행하는 면이 있기 때문에 스포일러를 조심하고 보는 것이 훨씬 재밌을 것이다.

밀려오는 감동에 보면서 울기도 많이 울었지만 연출된 장면들이 좀 있는 것도 사실이긴 하고 감동을 위하여 편집을 좀 교묘하게 이용했다고 해야 할까. 이건 어쩌면 장점일 수도 있겠다.





서칭 포 슈가맨 (2012)

Searching for Sugar Man 
9.5
감독
말리크 벤디엘로울
출연
말리크 벤디엘로울, 로드리게즈
정보
다큐멘터리 | 스웨덴 | 86 분 | 2012-10-11




요새 핫하다는 배우들만 모여 있고 그 배우들이 보여 주는 각인각색의 매력이 있는 영화다. 베인의 향기가 아직 묻어 있는 포레스트(톰 하디)의 무게감이 상당하다. 아주 짧은 분량에도 인상적인 게리 올드만은 말할 것도 없고. 소녀 같기만 하던 미아 바시코프스카와 제시카 차스테인 역시 각자대로 스타일의 매력 대결에 여념이 없는 듯 하다. 음 그러고 보니, 하워드(제이슨 클라크)는 그렇다 쳐도 '크로니클' 데인 드한은 포스터에 있을 법한데..?

다만 이야기가 너무 많이 본 듯한 이야기라 해야 하나. 많이 본 듯한 전개라고 해야 할까. 배우들의 좋은 연기가 만드는 한 씬 한 씬들이 매력적으로 이어 붙여져 멋진 이야기를 만들어 내지를 못하고 있었다. 약간은 아방가르드하게까지 느껴진 클라이맥스 씬까지.. 결말 씬 자체도 훈훈하지만 '로우리스'한 '나쁜 영웅들'의 결말로 적합한가하는 생각이 든다. 그것이 현실이라는 자조적 의미라면 공감할 수 있겠지만 그렇게 보이진 않았기 때문에. 물론 그런 결말 씬을 보여주는 이 영화의 전체적인 시각은 일관성이 있긴 하다.

그리고 여자 캐릭터들을 대하는 시선에서 느껴지는 마초즘이 시대와 내용 상의 수준을 넘어 언뜻 각본 자체에서 느껴 진다. 차라리 '범죄와의 전쟁'처럼 아예 여자 주인공이 없는게 낫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범죄와의 전쟁'과 이야기가 일면 비슷한데 (부제 붙이는 모습도..) 차라리 솔직하고 반성적인 그 쪽의 시각이 좀 더 끌린다.




로우리스: 나쁜 영웅들 (2012)

Lawless 
7.3
감독
존 힐코트
출연
샤이아 라보프, 톰 하디, 게리 올드만, 가이 피어스, 제시카 차스테인
정보
액션 | 미국 | 116 분 | 2012-10-18




6살 때 소아마비에 걸려 몸을 전혀 움직이지 못하는 남자 마크 오브라이언과 그의 섹스 테라피스트 셰릴의 이야기. 마크가 총각딱지를 떼어보려고 다짐한 이후로 여러 시도를 하다가 결국 섹스 테라피스트의 도움을 받기 시작한다는 내용인데 다분히 논란의 여지가 많은 이슈이지만 유머러스하게 풀어나가기 때문에 보기 불편하지는 않다. 마크가 고해성사 및 조언을 위하여 신부님을 계속 찾아 가는데 세 주인공의 연기가 다 좋아서 마크와 신부님의 대화, 마크와 셰릴의 '세션' 둘 다 즐거웠다. 이 둘이 자꾸 반복되는 구조가 조금 단조롭게 느껴지긴 했지만 결말은 많은 감동을 주었다. 엔딩 크레딧에 극 중 삽입된 시들의 작가가 마크 오브라이언이라고 나오는 것을 보고 한번 더 울컥했는데 포스터에도 써 있긴 하지만 실존 인물의 이야기라는 걸 처음엔 몰랐었기 때문이다. 영화 오프닝이 주인공 마크 오브라이언에 대한 뉴스 클립인데 보고도 실제 뉴스인지 실제처럼 만든건지 긴가민가했었다. 그래서 '세션'의 엔딩 크레딧은 내가 본 것 중 가장 슬픈 엔딩 크레딧이 되었다.





평범하게 살던 생선장수가 리얼리티 쇼에 출연 신청을 하고 나서 변해가는 모습을 그린 내용인데.. 뭔가 초반부터 너무 산만하고 좀 어수선하게 느껴지더니 내용이 좀 진행되고 나서는 그냥 너무 재미가 없었다. 조금 그럴 듯하게 가는 듯 했지만 점점 전혀 말도 안 된다고 느껴지면서 그나마 나던 실소마저 무표정으로 바뀌어 처음으로 극장에서 중간에 나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다가 그래도 영화를 끝까지는 봐야지 하며 결국 뭔가 있어 보이지만 사실은 그냥 정신 나간 것 같은 결말까지 봐 버렸다. 그래도 재밌게 본 사람도  많은 것 같은데 칸 영화제 심사위원대상도 받았다고 하고.. 난 왜 이렇게 재미가 없었을까.



리얼리티

Reality 
0
감독
마테오 가로네
출연
클라우디아 제리니, 파올라 미나치오니, 난도 파오네, 치로 페트로네, 아니엘로 아레나
정보
코미디, 드라마 | 이탈리아, 프랑스 | 115 분 | -



부산영화제를 처음으로 방문하여 제일 먼저 본 영화는 영화의 전당 하늘연극장에서 상영한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의 '사랑에 빠진 것처럼'. 작년에 키아로스타미 감독의 '사랑을 카피하다'를 재밌게 봤었고 중학생 때는 타의에 의하여 '체리향기'를 봤었는데 그 땐 아 이런 영화도 있구나 상 받는 영화는 이런가보다 했던 기억이 있다. '사랑에 빠진 것처럼'은 감독 본인을 제외하고는 일본 영화나 다름 없다. 제작사도 일본이고 로케이션 배우 모두 일본이니까..


어느 노인이 콜걸을 불렀다가 벌어지는 해프닝을 그린 소품 같은 영화인데 영화와 같은 제목의 삽입곡 'Like someone in love'의 재즈 분위기와 느릿느릿 잔잔한 일본 배우들의 자연스런 연기가 담긴 롱테이크가 잘 어울렸다. 포스터에도 보이듯이 차 안에 있으면서 동시에 유리창에 비친 도쿄의 풍경을 보여주는 씬이 많은데 특수효과를 쓰지 않으면서도 배우와 그 풍경을 오버랩으로 잡아내는 촬영이 인상적이었다.


3일 간 본 9편의 영화 중 유일하게 예매에 실패한 영화였으며 일찌감치 나머지 회차가 매진될 정도로 인기가 많았고 특히 GV 회차는 800석이 넘는 하늘연극장에서 했음에도 예매 직후 매진이 되었었다. 뒤늦게 겨우 표를 구해서 볼 수 있었는데 매진 사례의 이유는.. 나중에 알았지만 카세 료가 GV에 나오는 것이 한 몫하지 않았을까. 카세 료의 인기는 대단했다. 나는 모든 GV에 누가 나오는지도 몰랐지만 카세 료의 팬들은 그가 한국에 오는 걸 알고 있었으리라. 오쿠노 타다시 할아버지도 같이 나와서 GV를 했다. 타카나시 린은 상영 전에 간단히 인사만 하고 일본행 비행기를 타러 갔다.

카세 료는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이 오디션을 한다는 얘기를 듣고 영화 내용 상관 없이 한달음에 달려 갔고 오쿠노 타다시는 주로 연극 무대에서 활동한 배우인데 키아로스타미 감독을 전혀 알지 못했으며 소속사 권유로 오디션을 보았다고 한다. 그리고 GV 얘기를 들어보니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은 연출에 있어 홍상수 감독과 일면 비슷한 면이 있어 보였다. 적어도 이 영화에 있어서는. 배우에게 시나리오도 미리 안 주고 연기톤이 나지 않게 하기 위하여 연기를 하지 말라는 디렉팅을 했단다.. 



사랑에 빠진 것처럼

Like Someone in Love 
8.3
감독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출연
타카나시 린, 오쿠노 타다시, 카세 료, 덴덴
정보
드라마 | 프랑스, 이란, 일본 | 109 분 | -




19곰탱이테드를 보았다. 원제는 간단히 'Ted'인데 센스 있는 수입 제목인 듯.


말하는 곰인형이라고 마냥 순진무구하란 법은 없고 주인 꼬마일 때 처음 만나 30년 가까이 살다 보니 맥주에 마리화나에 창녀 끼고 노는 게 일상이 된 테드와 그의 베프(주인)의 이야기. 음담패설 말하는 곰인형이라는 컨셉은 매력적이지만 사실 그 내용의 골자는 여자친구가 '곰이야? 나야?' 물어보는 와중에 갈등과 결심과 오해가 이어지는 이야기로 아주 친숙하고 예상 가능한 내용이긴 하다. 그래도 곰인형이기 때문에 재밌고 가능한 변형과 상황들이 재밌어서 그냥 그렇게 계속 투닥투닥 하며 가도 좋았을 것 같은데 후반부의 갑작스런 사건의 난입은 편의적으로 극적인 결말을 내기 위하여 서두르고 있는 것 같아 좀 아쉬웠다. 갑자기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영화가 되어 버린 느낌. 그래도 19곰탱이의 언사는 유쾌발랄하기 그지 없다. 강남스타일 가사처럼 귀여운 외모와 화끈한 언행을 가진 그런 반전 있는 곰탱이. 완소 곰인형이다. 대사 중에 가수, 배우 등의 언급이나 까메오도 많아서 미국 대중 문화에 조금 관심이 있어야 테드의 음담패설을 더 만끽할 수 있을 것 같다.


추석 당일날 관람했었다. 그래서 가족, 친척(아마 오랜만에 만난 사촌이라든가..) 단위 관객이 대부분이었던 것 같은데 가족 친지와 볼만한 수준의 음담패설은 아닌 것 같다. 덕분에, 나는 C열쯤에 앉아서 내 앞에는 아무도 없었는데도 수위가 조금 높아질라치면(말하지만 꽤 높다. 오히려 노출은 적은 편인데 곰탱이가 인형을 빙자하여 하는 짓이 상상 초월이다.) 내 뒤에 꽉 찬 가족 친지 관객들의 웃지는 못하고 불편해 하는 표정이 그대로 느껴져 나는 한편으로 또 재밌었다.




19곰 테드 (2012)

Ted 
7
감독
세스 맥팔레인
출연
마크 월버그, 밀라 쿠니스, 세스 맥팔레인, 지오바니 리비시, 로라 밴더부트
정보
코미디 | 미국 | 106 분 | 2012-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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