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7 영화를 극장에서 보기 시작한 건 '카지노 로얄'부터, 그러니까 다니엘 크레이그가 007을 맡으면서부터다. 그 전 영화들은 극장은 물론이고 티비 등에서도 제대로 본 건 없었던 것 같다. '카지노 로얄'이 나왔을 때 "외모도 투박하고 몸만 던지는 007이 무슨 007이냐"라는 반응이 많았다. 본 시리즈의 영향이 007에도 미친 결과였다. 본 시리즈의 액션은 그 이후 나왔던 거의 모든 영화의 레퍼런스처럼 되어 버렸으니.


'스카이폴'은 '다크 나이트'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가히 '다크 나이트'는 히어로물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다. 더 나아가 액션 블록버스터의 새 장을 열었다고도 할 수 있다. 스타일리쉬한 영상 속에서 펼쳐지는 혼란의 시대, 고뇌하는 영웅, 흔들리는 주인공의 이야기. '스카이폴'은 제목부터 제임스 본드의 몰락을 연상시키고 있다. 영화 속 제임스 본드는 늙고 쇠퇴했다. 50주년 007 영화로서 50년의 세월을 그대로 제임스 본드에 투영시킨 듯하다.


50년을 지속한 프랜차이즈는 칭찬 받아 마땅하다. 007의 존재 이유를 설파하는 M의 모습은 설득이라기보단 자찬이자 자축이라고 느껴졌다. 그러면서 영화는 007의 새로운 시작을 알리고 있다. '카지노 로얄', '퀀텀 오브 솔라스'가 기존의 007에서 탈피한 액션 영화를 표방했다면 '스카이폴'은 전작과 전혀 다른 줄기의 내용으로 지난 50년을 반추하고 계승하지만 또한 새로워질 것임을 약속하고 있다. 이제 본드로 익숙해진 다니엘 크레이그를 이렇게 잘 활용하여 007의 몰락과 '부활'을 표현한 것에 감탄한다. 샘 멘데스의 연출은 영화를 고상하고 우아하게 만들었고 로저 디킨스의 촬영은 007의 부활을 너무나 아름답게 담아냈다. 그리고 다니엘 크레이그는 제임스 본드로서, 007 영화의 화신으로서 '부활'하였다. 조커의 향기가 느껴지는 실바는 역대급 빌런이 될 포스를 보이는 듯 했으나 실바가 아니라 하비에르 바르뎀이 풍기는 것이었던 것 같다.


기존 007 팬들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007의 새로운 시작은 반갑다. 007이 본에 영향을 받고 다크 나이트에 영향을 받아도 노장으로서 뒤지지 않고 계속 시리즈의 지속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은 관객 입장에선 즐거운 일이라고 느낀다. 그리고 크리스토퍼 놀란이 '다크 나이트'를 통해 간접적으로 007 시리즈에 영향을 미쳤다면 차기작 중 하나는 직접 연출할 일이 생길지도 모르겠다. 제작자와 놀란 감독이 서로 관심이 있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당분간의 일은 아니겠지만 그렇다면 더더욱 007은 이래저래 앞으로도 장수할 모양이다.





007 스카이폴 (2012)

Skyfall 
6.8
감독
샘 멘데스
출연
다니엘 크레이그, 하비에르 바르뎀, 주디 덴치, 랄프 파인즈, 나오미 해리스
정보
액션 | 영국, 미국 | 143 분 | 2012-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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