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들'이 예상치 못하게 그리고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천만 관객을 돌파하였습니다. '도둑들'은 한국 개봉 영화 중 역대 일곱번 째, 한국 영화 중에서는 여섯번 째 천만 영화이죠. 역대 천만 관객 동원 영화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실미도(2003, 1108만)


태극기 휘날리며(2004, 1175만)


왕의 남자(2005, 1230만)


괴물(2006, 1301만)


해운대(2009, 1145만)


아바타(2009, 1362만)


도둑들(2012, 1112만 - 8/19 기준)


맨 처음 천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는 2003년에 개봉한 '실미도'이고 이미 첫 천만 돌파 영화는 1,100만 관객을 동원해 버립니다. 그리고 일년마다 새로운 천만 영화가 등장하면서 차례로 기록이 갈아 치워집니다. '태극기 휘날리며', '왕의 남자', '괴물'까지가 그렇습니다. '실미도'와 '태극기 휘날리며'가 분단과 군대에 대한 민족 정서를 자극하는 내용이었던 반면 '왕의 남자'는 동성애 코드가 있는 사극으로 꽤 파격적인 소재였습니다. 많은 명대사와 함께 천만이라는 초대중적 성공의 상징을 얻어냄과 동시에 매니아층 형성도 이뤄냈었죠. 그리고 역대 한국 영화 최고 관객 동원작인 '괴물'이 등장합니다. '괴물'은 제목 그대로 괴수물 SF라는 어쩌면 대중적 반응과는 거리가 먼 장르를 표방하였지만 그 내용은 지극히 가족적이고 유머러스하면서도 반미적 풍자에 사회 시스템 비판까지 하고 있는 복합적인 영화였죠. 저는 그런 '괴물'을 굉장히 좋아했고 제가 좋아하는 영화가 최다 관객 동원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것도 좋아했습니다. 1300만을 넘기려고 막판엔 극장 상영을 좀 오래 질질 끌긴 했지만요.

그 이후로는 잠시 천만 영화의 출현이 주춤합니다. 2007년은 '디워' 842만, 2008년에는 '과속 스캔들' 824만이 각각 최다 관객 영화였습니다. 그리고 2009년에 여러 일이 벌어집니다. 일단 '해운대'가 오랜만에 천만 돌파 영화가 됩니다. 천만 돌파 영화들은 나올 때마다 신기록을 갈아치우는 모습인데 유일하게 '해운대'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즉, '해운대'는 현재까지, '역대 최다 관객 동원 영화'라는 타이틀을 가져보지 못한 유일한 천만 영화입니다. 특히 '해운대'는 이게 천만을 들어도 되는 영화냐 같은 논란도 많았죠. 물론 이런 논란은 어불성설입니다. 천만이 들어도 되는 영화가 무엇인지 누가 어떻게 정의할 수 있나요. 누가 말했듯이 천만 영화란 그냥 천만 관객이 든 영화지 영화의 재미나 완성도에 따라 말할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닙니다. 팀 버튼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월드 와이드 10억불이 넘은 것도 잘 이해가 가지 않는 현상이지만 영화 흥행에는 여러가지 요소가 있으니 나와 대부분의 사람이 비평적으로 영화를 어떻게 느낀다고 해서 그게 흥행 결과와는 상관이 없을 수도 있다는 얘기죠.

그리고 같은 해에 '아바타'가 등장합니다. 이미 개봉 전부터 영화 역사를 새로 쓸 것을 예고하고 나온 '아바타'는 1,330만의 기록을 세워 '괴물'을 내쫓으며 국내 최초 천만 돌파 외화이자 역대 국내 최다 관객 동원 영화의 타이틀을 거머쥡니다. 현재 공식 통계는 1,362만으로 되어 있는데 추후 개봉한 스페셜 에디션 관객이 추가된 것으로 보입니다. 사실 한국 최다 관객 동원 같은 기록은 너무나 소소한 것일 뿐이고 '아바타'는 월드와이드 27억불이라는 전무후무한 흥행 기록을 세워 버립니다. 역대 2위는 역시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타이타닉'으로 얼마 전 IMAX 3D 재개봉 기록까지 합쳐서 21억불입니다. 가히 영화의 왕이죠. 3위는 14억불의 '어벤저스'로 '아바타'는 말 그대로 넘사벽의 기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뒤로 다시 또 천만 영화는 종적을 감춰 버립니다. 2010년 '아저씨' 620만, 2011년 '트랜스포머3' 778만이 각 해의 최고 기록입니다.


그리고 2012년, 드디어 오랜만에 천만 영화가 등장합니다. 바로 최동훈 감독의 '도둑들'입니다. '다크 나이트 라이즈'와 같은 시기에 개봉하여 흥행을 우려하는 시선도 있었지만 최동훈 감독은 이미 '아바타' 때에도 '전우치'로 정면승부하여 600만 관객을 동원한 전력이 있죠. 물론 큰 상관은 없는 얘깁니다.. 상황도 많이 다르죠. '다크 나이트 라이즈'는 지금 600만 대에서 정리될 것으로 보이는데 긴 러닝 타임과 한정된 관객층 등 오히려 이 정도 한 것이 기대 이상일 수 있다는 평가입니다. 반면 '도둑들'은 개봉 22일만에 천만을 돌파하고('괴물'은 21일, '아바타'는 38일) 개봉 4주차에 접어든 지금까지도 이렇다 할 큰 적수가 없습니다. '토탈 리콜'은 기대 이하이고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도 선전하고 있지만 '도둑들'의 파이를 뺏어가기까지 하진 않는 듯 보입니다. 'R2B: 리턴 투 베이스'도 '도둑들'에게 위협이 되긴 커녕 CJ의 연이은 실패작 중 하나가 되어 버렸을 뿐입니다. 심지어 당분간 개봉 예정작 중에서도 별 대작이 보이지 않습니다. '본 레거시' 정도가 있으나 스크린 수를 얼마나 확보하고 유지할 수 있을 지 미지수입니다. '도둑들'은 8월 19일 현재 1112만 관객을 동원하여 이미 '실미도'의 기록은 넘어섰고 아직도 평일에도 20만명 이상의 관객을 유지하고 있어 이대로 가면 '괴물'의 1,301만이나 '아바타'의 1,362만을 넘어서는 것도 아주 어려운 일은 아닐 듯 합니다.


개봉 전까지만 해도 '도둑들'의 천만 돌파를 얘기하는 예상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되어 버리고 나서 이야기를 해보자면 개봉 타이밍이 거의 신의 한 수 급이었다고 이야기할 수 있겠지요. 물론 기본적으로 영화가 누구나 편하고 재밌게 볼 수 있는 내용과 주인공들을 내세운 점도 있습니다. 하지만 '도둑들'이 역대 최고 흥행 영화가 된다면 기존과는 좀 다른 모양새를 보이게 됩니다. 역대 천만 영화들이 기본적으로 우리나라의 배경과 공감대를 깔고 '민족', '가족', '감동' 이런 키워드를 공통적으로 가졌던 것과는 대조적이고 '도둑들'은 오히려 한국 영화에서 멀어져 장르적으로는 홍콩 영화에 가깝습니다. 소재 및 로케이션, 심지어 배우와 대사들도 국제적이죠. 국내 영화 판도에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고 볼 수도 있는 면입니다. 개인적으로는 '괴물'이나 '아바타'가 현재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더 자연스러워 보이지만 물론 그래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사람들이 '도둑들'을 더 많이 봤다면 그런 것이겠죠.


앞으로 천만 영화 타이틀의 의미는 많이 퇴색될 것 같습니다. 제가 '도둑들'을 아주 재미있게는 보지 않긴 했지만 '도둑들'의 흥행을 폄하하는 건 아니고 일단 스크린 수가 그만큼 늘어나고 있습니다. (전체 관객수는 늘어나고 있진 않습니다.) 따라서 예전보다 초반에 더 폭발적인 관객 동원이 가능해집니다. 일단 초반 인기몰이가 시작되면 흥행이 흥행을 불러오죠. 그리고 관객 수보다 매출이 더 중요하다는 시각이 있습니다. 각국의 박스오피스들은 당연히 매출액으로 흥행 집계를 하고 있고 영화 티켓이 몇 장이 나갔냐 보다 영화가 표 값을 얼마냐 벌어들었냐가 그 영화의 상업적 가치의 직접적 평가가 되는 것은 당연합니다. 영진위도 2013년부터는 관객수가 아니고 매출액으로 박스오피스 집계를 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관객수 집계는 초대권 논란도 있고요. 최근에는 3D, IMAX 등 영화 티켓 가격도 다양해져서 매출로 평가하는 것이 훨씬 합당해 보입니다. 만약 기존 개봉작들을 매출액으로 평가한다면 IMAX 3D, 디지털 3D 관객이 주였던 '아바타'의 기록은 다른 영화와 엄청난 차이를 보이게 됩니다.


어쨌든 '도둑들' 천만 돌파는 축하할 일이고 새 기록을 세우는 것도 기분 좋은 일이 될 것 같습니다. 국내 영화 시장에 매출액으로 흥행 순위를 매기는 분위기가 정착되기 전까지 또 어떤 천만 영화가 나올지 기대됩니다.


참고 :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www.kobis.or.kr)




p.s. 8/30 기준 '도둑들'이 관객 1,231만명을 기록하며 '왕의 남자'의 기록을 넘었습니다. 


p.s.2 10/2 기준 '도둑들'이 관객 1,302만명(배급사 집계)을 기록하여 '괴물'을 넘어 역대 한국 영화 최다 관객 동원작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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