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살의 신(Carnage)'
좀 가벼운 마음으로 영화를 보고 싶어서 관람. 그러면서 내로라 하는 배우들이 오로지 대사와 연기로 웃기는, 내용도 애들 싸움 어른 싸움 된다는 막장 스토리의 영화라 하여 기대감도 없지 않았다. 희곡 원작이고 아마 사실 각본은 거의 원작을 그대로 트랜스퍼했을 것 같은데 그래서 내용도 뭐 아파트 안에서만 벌어진다. 그래도 영화이므로 가능한 연출로써 시작씬은 경쾌한 음악을 배경으로 오프닝 크레딧과 함께 나오는, 이 모든 것의 시발점이 되는 야외 장면이다. 처음엔 방문한 부부가 그냥 금방 갈 것처럼 하는데 대체 어떻게 80분이나 아파트에 '갇혀서' 싸움을 벌이게 되나 그게 궁금했는데 알고 보니 그 과정도 웃기는데에 써먹는다. 교양 있는 대화, 가시 돋힌 대화, 이쯤 되면 막가자는 대화, 이것들 자체도 웃긴데 저렇게 변해가는 주인공들의 변화도 재밌다. 사실 시종일관 빵빵 터졌으면 하는 기대가 있었는데 그 정도는 아니었고 실제 연극으로 봤으면 훨씬 재밌게 보지 않았을까 싶다.
물론 이 영화의 장점은 웬만하면 돈 주고는 보기 힘들 저 배우들이 하는 '연극'..을 영화로나마 볼 수 있다는 점. 그리고 로만 폴란스키가 만든 코미디라는 점. 로만 폴란스키 감독은 원래 실내극의 대가로도 불리며 오래 전부터 코미디 연출에도 관심을 보였다고 한다. 요즘엔 압구정 무비꼴라쥬관에서 영화 보면 큐레이터가 간단한 해설을 해주기도 하는데 괜찮은 것 같다. 큐레이터가 예로 들어 준 폴란스키 감독의 코미디 영화가 '박쥐성의 무도회'. 무려 1967년작으로 폴란스키 감독이 '원래' 코미디에도 관심이 있었다고 말할 수 있을 작품이 되겠다. 어쨌든 그런 면에서 이 희곡은 로만 폴란스키 감독이 연출해보기에 적격인 작품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영화를 보고 나서 알았는데 '대학살의 신'은 불과 작년, 재작년에 대학로에서 공연이 있었다. 잘 몰랐지만 워낙 유명한 작품이라고 하니 다시 또 상연을 하면 보고 싶기도 하다. 옛날에 원작자 야스미나 레자의 다른 작품인 '아트'를 대학로에서 정보석, 이남희, 정원중 캐스팅으로 본 적이 있었는데, 물론 그 때는 원작자가 누군지도 모르고 봤었지만 정말 재밌게 봤던 기억이 있으므로 '대학살의 신'도 번안 공연으로 영화와 내용이 같아도 우리나라 배우가 하는 연극으로 보면 또 더 재밌게 볼 수 있지 않을까.